"I do believe we slander Christ when we think we are to draw the people by something else but the preaching of Christ crucified." - Charles Spurgeon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사람들을 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찰스 스펄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더더욱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이다.
"예수님 믿으세요~"라고만 말하는 것...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만 말하는 것...
"교회에 같이 한번 가보자~"라고만 말하는 것...
"예수님 믿으면 마음이 평안해져~"라고만 말하는 것...
"예수님께서 너를 구원하셨어~"라고만 말하는 것...
"요즘은 말로 직접 전도하는 것보다는 선한 삶으로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나아~"라고 하면서 입술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것...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진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전도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9)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자신의 심각한 죄성과 전적 타락,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와 진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신실하심,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들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대속과 속죄와 칭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 모든 것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에 빠져서는 안될 필수 요소들이다.
실제로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전도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도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기 힘들다.
비그리스도인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혜, 구원 등은 많이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의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기분을 의식하여 희석시키거나 아예 누락시킨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9절의 경고에 이어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기분을 의식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합당한 태도가 아니다.
그들의 기분을 배려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편집된 복음은 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전했을 때 상대방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 밖에 없다: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면 된다.
'그러다가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해? 더 안 좋은 거 아냐? 그렇게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너무 부담 갖지 않도록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면 안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겉으로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은 복음을 전할 때, 훨씬 더 핍박이 심하고 열악한 상황 속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몸을 사리며 복음을 전한 적이 없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많은 경우에 적대적으로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심지어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말한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양자택일이다.
세상과 부딪치기 싫으면 하나님과 절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7장에 나타난 스데반 집사님의 모습을 우리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전해도 되는 상대적인 메세지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메세지다.
이 시대에 맞게 타협하면서 복음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예쁘게 포장하는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염소의 숫자를 늘리는 지름길일 뿐이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제대로 전하여 목자의 음성에 반응하는 양들을 찾아 주님께로 안내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복음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하는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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