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필찬 지음
좋은나무교회 87또래 박준성
평소에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여름에 CMF 수련회의 주제말씀이 요한계시록이었고 내가 조장으로 가게 되어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은 갖추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목사님께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수련회에 가기 전에 이 책 초반에 나오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총론 부분만 간신히 읽었고 수련회가 끝난 후에는 이 책을 잠시 덮어뒀다가 최근에 다시 마음먹고 힘내서 드디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어렵고 난해하며 이단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를 즐기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접근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설교자 입장에서도 다른 성경 본문에 비해 더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고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교를 아예 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인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정말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이고 요한이 언급한 일곱 교회들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에게 유효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할지에 대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며 그릇된 해석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으면서 나의 성경적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을 내가 절반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혹시 신학생들을 위한 책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용어들이 많았고 저자는 구약과 신약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풀어나간다. 이 책은 그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첫 장에서 요한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시작한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난해한 작업이다. 구조분석에 관한 한 학자들 간에 일치하는 유일한 견해는 구조분석에 있어서 역사상 일치한 것들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조 분석이 일치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복합적 사건 전개 방법 때문이다. 단순히 일직선이 아닌 나선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한 사건 전개 방법이 아닌 점층적 반복에 의한 표현 기법과 묵시 문학적 초월적 성격이 혼합되어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1장의 첫 단락을 읽으면서 이 책의 내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웠고 실제로 책을 쭉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상징들 속에 어떤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물론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제대로 된 해석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글이나 책을 읽을 때 나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과연 정말 맞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품으며 논리비판적인 자세로 참과 거짓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책은 평소보다 더 긴장하며 읽었던 것 같다. 저자 이필찬 교수의 해석이 모든 면에서 타당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경우에는 내가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내 기본 지식이 거의 제로(zero)에 가깝기 때문에 ‘아... 잘 모르겠다...’ 싶은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1장 첫 단락의 내용처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단순히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기보다는 사도 요한이 문학적 기교를 통해 내용을 나선형으로 전개시켜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부각시켰다고 보는 저자의 설명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 요한의 다른 책인 요한복음과 같이 구조적 패턴이 분명히 보이는데 그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의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인류의 역사 속 특정 사건들과 일대일대응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성경의 예언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고려하는 것이 더 건강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런 방식으로 성경 안에서 성취된 예언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다. 다윗 왕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에 의해 성전이 지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경우에도 한 내용을 역사의 한 사건으로 성취되어 끝난 것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포함하되 그 이후에 점층적으로 성취되어갈 여지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완성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님,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건가요?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렇게 난해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불평도 있었고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여 답답함을 느꼈던 제자들의 심정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며 ‘아!’보다는 ‘엥?’을 더 자주 중얼거렸던 나의 마음과 비슷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앞으로 조금씩 더 깨달아갈 것이라고 믿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웃는 얼굴로 이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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