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스트로벨의 예수 그리스도> (The Case for the Real Jesus)
by Lee Strobel
좋은나무교회 87또래 박준성
생각 없이 신앙서적 네 권을 펼쳐놓고 거북이 기어가듯 천천히 읽다가 ‘이래서는 끝이 없겠다’ 싶어서 우선 한 권을 끝냈는데, 바로 <리 스트로벨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리 스트로벨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여름, 친한 중학교 친구 한명과 점심 식사를 했는데, 무신론자였던 그 친구가 나에게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초자연적, 신화적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어!”라고 했을 때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의 내용이 익숙했던 나에게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했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이 과연 사실인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 생기면서 혼란스러움과 회의가 덮쳐왔다. ‘정말... 어떻게 모세의 홍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 어렸을 때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까 그런 것쯤이야 쉽게 했을 것이라고 믿었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직접 그런 기적을 경험한 적도 없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성경이 과연 100% 사실일까?’와 같은 생각이 내 안에 맴돌며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을 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현재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시자 당시에 분당샘물교회 청년부를 담당하고 계셨던 목사님을 찾아갔다. 상담 중에 목사님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고 마치면서 나에게 리 스트로벨의 책들을 추천해주셨다. 그래서 예과 2학년 때 리 스트로벨의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 <특종! 믿음 사건(The Case for Faith)>, <창조설계의 비밀(The Case for a Creator)>을 읽게 되었다. 이 책들은 나의 무지로 비롯해 생긴 불신을 해소하는데 충분했고 20대 초반에 흔들리던 내 믿음을 붙잡아 주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리 스트로벨의 책을 읽게 된 것은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신앙서적 발제에서 내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저자에 대한 배경을 알면 유익한데, 리 스트로벨은 예일(Yale)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저명한 신문사 ‘시카고트리뷴’에서 법률 전문기자로 활동하던 반(反)기독교적 무신론자였다. 그러다가 아내가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나가는 것을 보며 기독교의 거짓을 파헤치겠다는 목적의식으로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거짓보다는 오히려 진리를 발견하게 되어 결국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다. 전에 내가 읽었던 그의 책들뿐만 아니라 이번에 읽게 된 책 역시 기독교 역사와 신앙의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나누었던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책으로 쓴 것인데, 기자로서의 그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진리를 드러내려는 노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진리를 탐구한다고 누구나 다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 스트로벨의 삶과 활동들을 보면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이성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받아들일만한 어설픈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리 스트로벨의 이런 책들은 어렸을 때 나의 얕았던 신앙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데 큰 몫을 해주었다. 교회 내에서는 믿음을 대전제로 깔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의외로 ‘성경이 정말 사실인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나?’,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되나?’ 등과 같은 토픽들에 대해 그다지 많이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믿음이 없거나 회의에 빠진 사람들이 제기할만한 질문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는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는 것에는 분명히 유익한 면들이 있고 나도 그런 유익을 충분히 누렸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주변 지체들에게 신앙의 필독서로 추천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런 내용들이 신앙의 본질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들을 다 이해하고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참된 믿음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최근에 방송에서 JYP 박진영이 성지순례를 하며 진리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을 다녀왔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안 믿어진다”고 고백한 것만 봐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결코 단순한 지적 동의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과 영혼과 삶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본질적으로는 ‘가치’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가 과연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예수는 역사다>와 <리 스트로벨의 예수 그리스도>에서는 주로 성경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여러 증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독자들을 설득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성경의 사실성을 공격하는 외부의 거짓 사상들로부터 진리를 이렇게 논리적으로 변호하는 시도들은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사람의 지혜와 논리로 입증할 수 있는 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곧 말씀이시다. 누군가가 입증하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말씀을 읽고 성령님께서 눈을 열어주시면 말씀이 자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런 내용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새롭고 신기해서 이런 논리적 접근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균형을 잃고 이런 접근 방식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자칫 ‘내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게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한다. 즉, 보이는 증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죄를 대속해주신 그분께서 정말 살아 계시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분을 가장 잘 알아갈 수 있도록 주어진 말씀 곧 성경의 완성과정 역시 그분이 친히 주관하셨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이 무익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소화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회의에 빠져 있는 지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여 내 믿음을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며 경우에 따라서 상대방의 잘못된 이해와 지식을 바로잡아줌으로써 그 사람이 믿음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벗겨버릴 수도 있다. 특히 6년 전의 나처럼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지체들이나 주변의 무신론자 친구들과 이런 주제를 두고 대화를 종종 나누는 사람들은 이 책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리 스트로벨 시리즈들도 꽤 유익할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특성 상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중심이 깊고 견고해지도록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필독서 목록에 올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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